“바빌론”이 잊히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화려한 영상미나 연기력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1920년대 헐리우드의 혼란과 창조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정교한 사운드 디자인이야말로 핵심입니다. 음악을 생업으로 하는 영화음악감독의 관점에서 이 영화의 음향이 어떻게 서사를 강화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바빌론”의 스토리텔링에서 사운드의 역할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바빌론”은 시끄럽고, 방대하며, 에너지가 넘치는 작품으로,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넘어가는 시기를 포착하고 있습니다. 작곡가로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사운드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영화 속 핵심 인물처럼 기능한다는 것입니다. 파티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트럼펫 소리부터 영화사의 역사를 보여주는 마지막 몽타주까지, 소리는 감정, 타이밍, 시대적 배경을 함께 전달합니다.
저스틴 허위츠가 작곡한 사운드트랙은 장면을 지원하는 수준이 아니라, 장면 자체를 정의합니다. 리듬은 불규칙하고, 거칠며, 동시에 철저하게 구성되어 1920년대의 재즈적 혼돈을 반영합니다. 작곡가 입장에서 보면, 이야기의 에너지에 맞춰 음악을 조율하는 교과서적인 예입니다.
의도적으로 구성된 소음, 대사, 음악의 레이어
“바빌론”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사운드 레이어가 얼마나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는가입니다. 대사는 배경 소음이나 음악과 경쟁하며 전달되는데, 이는 초기 헐리우드의 청각적 과잉 자극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한 연출입니다. 이러한 혼란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관객을 혼란에 빠뜨리고 시대의 광란에 몰입시키기 위한 장치입니다.
작곡 관점에서 보면, 허위츠는 이러한 혼잡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음악이 존재감을 가질 수 있도록 철저히 설계했습니다. 멜로디는 짧고 강렬하며, 금관악기 중심의 리듬은 배경음을 뚫고 나와 관객의 감정을 붙잡습니다. 이는 음색과 리듬으로 혼란 속 질서를 만들어내는 예술입니다.
등장인물 감정을 반영하는 악기 구성
“바빌론”의 주요 인물들은 각각 특정 악기 모티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 매니(디에고 칼바 분)의 에너지 넘치는 성격은 트럼펫 중심의 테마와 어울립니다. 반면, 넬리(마고 로비 분)의 몰락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이 등장합니다.
작곡가에게 이러한 악기별 감정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대사가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음악이 대신 전달하는 방식이며, 관객에게 캐릭터의 감정 흐름을 자연스럽게 전달합니다. “바빌론”에서는 이러한 음악적 변화 덕분에 인물의 희로애락이 더욱 명확하게 다가옵니다.
영화의 전환기를 소리로 표현한 방식
영화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인상 깊은 장면은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의 전환을 소리로 표현한 부분입니다. 한 인물이 유성영화 촬영 중 대사를 반복적으로 실수하는 장면은 점차 좌절과 긴장으로 치닫습니다.
이 장면에서의 사운드 디자인은 일부러 답답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침 소리, 발소리, 숨소리 하나하나가 과장되어 들리며, 촬영 중의 정적은 오히려 더욱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이러한 과장된 현실주의는 당시 영화 제작 환경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작곡가 입장에서 볼 때, 이 장면은 사운드가 분위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어떤 순간에는 웅장한 오케스트라보다 침묵이 더 강렬하게 작용합니다. 침묵은 결코 공허하지 않으며, 가장 순수한 형태의 긴장감입니다.
예비 작곡가와 사운드 디자이너가 배울 점
“바빌론”은 영화 음악과 사운드 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사운드가 내러티브의 속도, 문화적 에너지, 감정의 톤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생생히 보여줍니다. 작곡가 지망생이라면, 이 영화의 음악 속에서 장르 결합, 시대적 고증, 테마 전달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저스틴 허위츠의 작업은 재즈와 영화적 감정 사이의 균형을 탁월하게 보여줍니다. 그의 음악에는 반복되는 모티프, 역동적인 금관 악기 구성, 예측 불가능한 리듬이 어우러져 있어, 대담하면서도 통제된 작곡의 모범 사례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결론: “바빌론”의 사운드는 왜 특별한가
결국 “바빌론”이 돋보이는 이유는 사운드 정체성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단지 변화를 말하지 않습니다. 변화의 시대를 들려줍니다. 충돌음, 휘파람, 베이스음, 스네어 드럼 소리 하나하나가 할리우드 황금기의 혼란한 영혼을 그대로 전달합니다.
작곡가의 관점에서 보면, “바빌론”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광기와 야망, 상실이 교차하는 하나의 교향곡입니다. 그 정돈된 혼란 속에서 우리는 단지 오락을 넘어서, 창작의 영감을 발견하게 됩니다.